충무공 이순신 장군에게 1597년 당시 벌어진 일들 1597년 2월 26일: 왕명을 거부했다는 죄로 삼도수군통제사직을 삭탈당한 후 한양으로 압송 4월 1일 : 출옥 후 백의종군 4월 13일: 한양으로 압송된 자신을 보기 위해 어머니께서 배 타고 올라오시다가 향년 83세로 사망. 4월 19일: 관원들의 재촉으로 장례도 못 치루고 다시 임지로 출발. 이때 부터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인하여 난 중일기에는 '비통', '통곡'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게 됨. 4월 27일 : 순천에 도착하자, 도원수 권율이 휘하 군관을 보내어 조문함.... 5월 4일: 돌아가신 모친 생신 날이라 일어나자마자 하염없이 통곡함. 하늘도 슬퍼했는지 오후에는 비가 하루종일 내림. 5월 6일 : 꿈에서 돌아가신 두 형님(희신, 요신)이 나타나 이순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하염없이 통곡함. 7월 15일 : 칠천량 해전으로 인하여 조선 수군 궤멸 7월 18일 : 칠천량 해전 대패소식을 전해듣고 하염없이 통곡하다가 도원수 권율에게 본인이 직접 연안으로 가서 확인 하겠다고 건의. 도원수 권율은 흔쾌히 허락. 8월 3일 : 조정에서 선전관이 와서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
8월 21일: 하루종일 몸살을 앓고 10번 토하다가 잠도 못자고 앉아서 밤샘. 23일까지 이 상태로 지내고 배도 못탐. 9월 2일 : 배설이 도망감. 9월 11일 : 홀로 배 위에 앉아서 "세상에 나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림 9월 16일: 명량대첩 9월 25일~26일: 몸살과 오한을 앓음 10월 1일 : 본가 아산이 적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 이회를 보내 상황을 파악하도록 함. 그 와중에도 아산으로 보낸 아들 걱정 10월 14일 : 21살 셋째 아들 이면의 전사 소식을 전해 들음 10월 15일 : 잠을 못잠 10월 16일 : 부하들 앞에서 슬픔을 참다가 결국 노비 강막지의 소금창고로 가서 통곡 10월 17일 : 향을 피우고 하얀 띠를 두른 후 통곡 10월 19일 : 꿈에서 고향집에서 보낸 노비가 나타나자 죽은 아들 생각에 또 다시 통곡. 그날 밤 코피를 한 되 가까이 쏟음. 12월 30일: "비통할 따름이다" 라는 말로 1597년 정유년 난중일기는 끝남. 4줄요약 1. 파직+압송+백의종군+모친상 4연타. 심지어 어머니 장례도 못 치루고 떠남. 2. 칠천량 해전으로 박살난 조선수군을 재건하고 명량해 전을 대승으로 이끔 3. 셋째 아들 사망. 4. 이 모든 것이 전부 1년 만에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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