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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멍 귀농 – 반려견 위키와 귀농한 디시인 이야기

이 연재글은 놀랍고 굉장한 이야기 2탄의 3번째 글입니다.

1인 1멍 귀농 1주년

작년 10월 15일에 서울에서 경북으로 우리 개 위키랑 단둘이 귀농했다. 참고로 나는 위키 한 살 생일부터 키웠고 처음 맞이한 반려동물이다.

첫 주인이란 놈이 두들겨 패고 접종도 안 해줘서 그동안 파보, 심장사상충 치료해서 살아났고 2년 전엔 갑자기 다리 네 쪽 다 마비되어 못 걸었다. 중증근무력증이라는 병이었는데, 그것도 다 이겨내고 지금은 튼튼하다. (이 병은 완치 판정이 없어서 나중에 다시 쓰러지면 다시 약 먹어야 한다.)

이 병을 치료하면서 번갯불에 콩 궈 먹듯 결정해서 빈집 알아보고 귀농했다

우리는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오후 두 시간씩 산책하고 사과랑 감이 많이 나는 동네라 낙과 주워 먹고 여름엔 집 앞 냇가에서 매일 물놀이한다.

혹시 도시에서 혼자 멍멍이 키우면서 사는 사람 중에 귀농귀촌에 관심 있는 사람은 연락하면 성심껏 도와주겠다.분명히 경제적 어려움은 있다. 하지만 하나뿐인 가족과 매일 함께 하며 자연을 벗하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

그리고 책임감 없는 사람들은 개 키우지 않길 바란다. 위키 기르면서 돈도 많이 썼지만 사랑 없이는 절대로 기를 수 없는 걸 깨우쳤기 때문이다.

나도 위키를 기르지만 위키도 나를 기른다.

2017년 10월 15일에 우리 개 위키랑 단둘이 귀농했다. 2019년 11월 멍갤에 올린 1인 1 멍 귀농 1주년 글이 힛갤에 갔고 멍갤러들의 큰 사랑으로 여기저기 알려져 잠깐 행복한 유명세도 치렀다.

우리는 첫해와 마찬가지로 행복하게 둘째 해를 누렸다.

서리가 내린 후에 콩을 털었고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었다. 낙엽을 따라 산속을 뛰었고 2019년의 첫 태양을 보러 둘이서 산꼭대기에 올랐다.

어린이날에 도시로 나들이를 갔다. 위키는 꽃을 좋아했고 우리는 꽃구경을 열심히 다녔다.

6월 어느 날 우리가 2017년 11월 심었던 작약은 그 꽃말처럼 수줍게 하나씩 꽃망울이 터졌고, 곧 우리 농장은 온통 핑크빛이 되었다. 때마침 뜨거워진 날씨에 매일 물놀이를 했다. 동물농장 애니멀 봐에서 위키를 보러 온 것도 큰 즐거움였다.

물고기를 잡았고 먹고살기 위해 새로 쪽파를 심었다. 쪽파 씨를 다듬을 땐 몇 날 며칠을 위키와 꼭 붙어있었다.

위키는 날마다 웃었고 나도 그랬다.

그러나 어느 날 위키는 가출을 하고 돌아온 후 잘 넘어지고 빙빙 돌고 한 뼘도 되지 않는 높이를 뛰는데 주저했다. 냄새를 잘 맡지 못했고 땅에 떨어진 간식을 코앞에서도 못 찾았다.

위키는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았다.

약을 먹지 않으면 1~3개월뿐이라 했고 1년을 사는 것을 목표로 약을 먹었다. 위키는 바보가 되는 병에 걸렸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못 걷는 병 보단 나으니까.

위키는 여전히 잘 먹었고 산책 가는 걸 좋아했다. 다만 바보가 되어서 아무한테나 옆에 가서 기대 었고 낯선 사람이 와도 꼬리를 흔들었다. 위키는 원래 나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에겐 웃음도 짓지 않고 꼬리도 흔들지 않는 아이였다. 경계하고 짖는 아이였다. 이런 레트리버는 세상에 없다고 봐도 될 그런 아이였다.

사람들은 위키가 바보가 되어 변한 줄은 모르고 위키가 이제야 개다운 개가 되었다고 했다.

11월 1일 위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만나 놀았다.

선물도 많이 받았고 사랑한다는 말도 실컷 들었다. 위키는 내내 웃었다.

11월 6일 위키는 영원한 소풍을 떠났다.

위키가 떠나고 이제 스무날이 지났다. 위키는 지금껏 꿈에 네 번 찾아왔다. 시시콜콜 쓸 수 없지만 위키는 분명한 메시지를 줬다. 그리고 이제 슬픔 속 위키는 보낸다.

작년에 처음 썼던 글의 마지막.

나도 위키를 기르지만 위키도 나를 기른다.

언제나 옳은 말이다.

위키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줬다.

위키는 별, 내 마음속 푸른 소나무. 잘자라 우리 위키. 다음생엔 인간으로 태어나라. 아빠가 개로 태어날테니까. 그때도 모자란 놈들끼리 잘 살자.

귀농멍위키

2017년 10월 15일 우리 개 위키랑 단둘이 생면부지의 동네로 귀농했다.
2019년 11월 6일 위키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이제 그 이후로 1년이 더 흘러 2020년 11월 6일 위키가 떠난지 1년째 되는날이다.

개와의 이별 이후 지난1년 2019년 11월 6일 위키가 떠났다. 장례를 치루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꿈처럼 희부윰하기만한 죽음과 이별이, 며칠의 시간이 흐르자 또렸해졌다.

벌써 깨버린 꿈인걸 알고 있지만, 깨기 싫어 이불을 더 꾹꾹 뒤짚어 쓰는 꼴이었다. 하루에 세병의 소주를 마시고 잠들기를 스무날남짓 반복하고 꿈에서 위키를 만났다. 네번이나 만났다.

이 얼마나 한심한 소리인가? 꿈에서 개를 봤다고 좋아하다니. 꿈은 환영일 뿐이니 이 얼마나 비과학적이느냐. 그래도 좋았다. 용기를 내어 다시 내려왔다.

많은 분들이 위로해주셨는데 그 중 어린이 지효와 미국에서 국제전화로 술 그만 먹고 힘내라던 어떤 할머니가 특히 기억난다. 꽃을 좋아하던 위키를 위해 꽃농사를 조그맣게 시작하기로 했다.

올 봄 처음 심은 튤립이 피었고 곧 위키와 가꾸던 사과나무도 꽃피고 둘이 귀농하며 처음 심은 작약은 더 쑥쑥자라 온통 분홍보랏빛이 되었다. 가을엔 사과가 열렸다.

다시는 개를 못기를줄 알았지만 짭트리버를 기르게 됐다. 이름은 비엘사다. 위키와 다녔던 산책길을 이제 엘사와 다닌다.

내 생각엔 개는 늘 멍청하고 가끔 똑똑하기에 인간에게 기쁨을 준다.

지난 1년.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마무리 할 때면 문득 위키가 생각난다. 이곳의 모든일들과 터전의 흔적이 위키와의 추억으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쪽파를 심을때도 튤립을 손질할때도 그랬다.

작약꽃이 피면 위키가 작약꽃을 잘 먹었는데 사과밭을 지나가면 위키가 이 집 사과를 잘 훔쳐 먹었는데, 냇가를 지나가면 위키가 여기서 헤엄을 쳤는데…

이런식이다.

그리움은 잠자코있다 불쑥불쑥 찾아와 괴로움이 되기도 기쁨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1년이 흘러 어제 2020년 11월 6일 위키에게 술한잔 따라줬다.

내일은 유골을 우리둘이 처음 심었던 첫 작약에 묻을것이다. 앞으로도 슬픔은 문득 찾아오긴 하겠지만 이제 기쁨의 위키를 더욱 추억하고자 한다.

위키는 생전 뇌종양 치료를 하는데 너무 큰 돈이 들어 딱 한번 후원을 받은적이 있다.
나는 올해 위키가 받았던 후원금액 550여만원 만큼 전부를 튤립, 작약꽃, 쪽파, 사과를 팔아 모두 유기동물구조단체에 나눔했다.

이 돈은 내돈이 아니라 아픈 동물을 대신해 위키가 받았던 모두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농장의 고객 상당수가 위키 때문에 우리 꽃과 사과 작약을 구매하고 있으니 위키가 받은 후원금을 유기동물들에게 환원하는 것이 옳은일이다.

내 초라한 삶을 기쁘게 만든건 위키였다.

위키는 충분히 아름다운 개였다. 나도 위키를 길렀지만 위키도 나를 길러줬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같이 사는 개들한테 건강관리 잘 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개 데리고 봄에 놀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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