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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내 남자 친구는 유치원 때부터 사귀었다. 짝꿍이 되어서 그 뒤부터 계속 계속 손잡고 다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가 중딩 고딩도 아니고… 나랑 내 남자 친구는 올해 서른이다. 연애만 23년이다. 이게 뭐지? 중학생 때 애들이 너네 사귀는 거야? 라고 물어볼 때 필사적으로 아니라고 아니라고 했다. 그래놓고 너 왜 아니라고 그래?! 내가 싫어? 라며 발광했다. 서로 발광했다. 부끄러웠나? 고등학교땐 서로 갈라졌다. 나는 여고 걔는 남고. 근데 매일 아침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갔고, 야자 끝나고 학원 끝나고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려서 같이 돌아왔다. 유딩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우리 집은 202동 601호, 남자 친구는 202동 901호였다. ᄏᄏᄏᄏ
남자 친구는 위로 누나 하나 형 하나 있다. 남자 친구가 대학 입학하자마자 남친네 부모님은 시골로 귀농하셨다. 남자 친구는 형집에 얹혀살았다. 왜 그 집 청소를 그렇게 열심히 해줬나 모르겠다. 전생에 식모였는지 고마워하지도 않았는데. 남자 친구가 군대 가기 전에 나한테 헤어지자고 했다. 카페에서 분위기 잡고 눈물 뚝뚝 흘리고 있는데, 지나가다가 카페에 앉아 있는 우리를 보고 케이크라도 사주겠다고 들어오던 남친네 누나가 그 얘길 다 듣고 우리 앞에와서 남자 친구한테 주먹질을 하면서 기다려 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뭐 하는 거냐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사실 그때는 헤어지고 싶었는데 ᅮᅮ 너무 지겨웠는데…. 7살 때부터 십 년 넘게 지겨웠는데 말이다ᄏᄏᄏᄏ
군대 가기 전에 여행을 가자고 했다. 엄마한테 뭐라고 말해 아이씨, 뭐라고 거짓말하지? 친구들한테 너네 집에 하루 잔다고 해 이런 합의를 보고 집에 오니까 엄마가 너ᄋᄋ이랑 놀러 간다며? 남자 친구가 나불 나불…? 남친네 누나가 X돔 챙겨줬다. 미친 근데 설악산 울산바위 다녀오고나니 힘들어서 코 골면서 잤다. 강제 순결 또르르…
말이 나와서 말인데 첫 키스?? 아니 첫 뽀뽀도 우리는 얼떨결에 했다. 고등학생 때 야자 전 석식시간에 학교 벤치에서 삼각김밥 까먹고 콜라 마시고 그러다가 야 너 이거 먹어 너도 이거 먹어 하면서 고개 홱 돌리다 얼떨결에 입술 박치기가 1mm 닿은 적이 있는데 진짜 스쳐 지나간?? 남자 친구가 나 보다 먼저 “엄마야!” 이랬다. 엄마는 무슨 엄마…
그 뒤로 진짜 아무 일도 없었다. 얜 진짜 X욕을 공부로 풀었나..ᅮ_ᅮ? 남자 친구를 사귄 적이 얘 밖에 없어서 난 남잔 다 이런 줄 알았다. 군대 가기 전에 내가 잘 다녀와 으어으엉 ᅲᅲ 눈물 콧물 짜내고 짭짜름한 키스를 했다. 얜 그때도 엄마야 이랬다. 이런 디질랜드….휴가 나올 때마다 어떤 놈이 찝적대진 않냐? 그래서 아닌데 아닌데? 완전 여기저기 난리 났는데? 나 근데 아무도 안 만나 나 완전 착하지? 이랬다. 남자 친구는 바로 뻥치시네라고 했다. 맞다 뻥이다. 나도 얘 말곤 아무도 없다.
면회를 갔다. 초코파이를 박스채 사갔다.(한 박스 몇 개들이 말고 그 몇 개들이 한 상자가 잔뜩 든 박스) 남자 친구는 군대에 오니 초코파이가 종교가 된 거 같다고 했다. 왜 등산 가서 초콜릿을 먹는지 알겠다고. 그래서 설악산 가서 뻗었냐? 남자 친구는 그 얘길 왜 하냐? 했고 엄마는 다행히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토익에 매달리며 히스테리를 부리는 사이 남자친구는 전역하고 알바를 했다. 난 나한테 선물을 사주려는 줄 알았다. 대체 그 돈은 어디다 쓴거니… 난 대학을 졸업하고 다행히 바로 취업을 했다. 남자친구는 아직도 한참 더 학교를 다녀야 했다. 식모도 모자라 호구 오브 더호구가 되었던 나는 이십년 만난 남자 친구가 뭐가 좋은지 비밀통장 만들어서 돈을 모았다. 걘 내가 모은 천만원 들고 어학연수 갔다 왔다. 난 미국 가 본 적도 없다.
졸업 후 반년 정도 백수 생활을 하던 남자 친구는 취업을 했다. 너 이번에도 첫 월급 타서 내 선물 안 사 오면 죽어! 하니 기대하라고 했다. 난 커플링이 갖고 싶다고 했다. 유딩 때부터 장난감 반지 하나 사 준 적이 없었다. 첫 월급 타서 레스토랑 예약했다고 밥이나 먹었다. 반지는? 그건 너무 비싸. 그때 받은 선물은 구두. 구두 신고 딴 사람한테 가라는거야 뭐야….. 아……내 천만원. 그땐 오로지 천만원 생각밖에 안 났다.
내가 스물 일곱살 때 우리 엄마가 남자 친구한테 넌 얘랑 결혼을 할거야 말거야? 하니까 남자 친구는 어머님 저 이미 아들 같지 않아요? 동문서답을 했다. 우리 엄마는 그러게 사위 같아야 하는데 아들 같아서 그것도 문제네… 하고 넘어갔다. 그래서 결혼얘기는 한 건지 만 건지도 모르겠다. 남친네 집에 갔을 때 어머님은 나한테 감식초, 오미자효소, 인진쑥환 이런 걸 주면서 난 네가 사고를 쳐도 괜찮다고 했다. 그러게요…… 순간 남자 친구네 어머님한테 어머님 아들 남자 구실을 잘 못하는거 아닐까요? 라고 말할 뻔 했다.?
나는 남친네 아버지랑 같이 술 마시는 사이다. 남친네 집은 남친네 형도, 누나도 어머니도, 남자 친구도 소주 1병씩 못 마시는데 어쨌든 나는 세병은 마신다. 아버님은 항상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다 하하하 하신다. 저 아직 며느리 아닌데요. 오호호 이러면서. 남자 친구집에서 깻잎을 박스채로 따 가지고 와서 깻잎 장아찌를 만들고, 그 깻잎 장아찌에 밥 싸서 남자 친구 밥먹고, 나도 밥먹고?
연애를 할 때 남들처럼 알콩달콩 로맨틱하고 두근두근한 그런 감정이 사실 거의 없다. 그런 알콩달콩한 마음은 언제 있긴 했나 싶은 기분. 유치원땐 아무것도 몰랐고 초딩 중딩땐 부끄러웠고, 고등학생땐 서로 학교가 달라서 그냥 묵묵히 공부나 하고 나는 신화팬 걔는 핑클팬ᄏᄏᄏ? 근데 또 신기한게 남자 친구한테 점심마다 점심 먹었냐? 메시지가 오면 똑같은 다섯 글자인데 되게 반가운 기분. 가끔 데이트도 아닌데 시간 맞춰서 같이 퇴근하고 그러면 학창 시절 생각나고 그런다. 나를 집에 바래다 주고, 걔는 걔 자취하는 곳으로, 회사 근처에 집을 얻을 것이지. 이 동네가 좋다고 우리 동네에서 자취를 한다. 그래야 집에 바래다 주기도 좋지라고 하는데, 그게 목적일까 우리 엄마 반찬이 목적일까?
요즘은 밖에 나가는 데이트도 거의 안 한다. 이미 웬만한 데는 다 다녀온 기분. 그래도 예전엔 맛집도 관심 있었는데 이제는 맛집도 안 찾은 지 오래. 집에서 뒹굴 거리면서 내가 밥 할 테니 네가 설거지해라 이런 거. 남자 친구네 누나도 너네도 나가서 좀 놀라고 할 정도. 그렇게 돈 모아서 외국을 간다. 하와이, 사이판, 푸껫, 오키나와, 도쿄, 상하이 다녀왔다. 나중에 프랑스 가자고 했었다. 나는 내가 아플 때 약도 안 사다 주고 게임했다고 두고두고 갈구고, 남자 친구는 군대 있는 내내 면회 세번 왔는데 세번 다 도시락 한번을 안 만들어 오냐고 두고두고 갈군다.?
남자 친구 옷은 속옷에 양말에 셔츠 정장에 코트 점퍼까지 내가 고르고, 남자 친구는 그것도 모자라서 내 네일 색깔까지 자기가 고른다. 홈쇼핑에서 뭐 사면 반 절반 뚝 떼서 우리 집에 가지고 오고, 우리 엄마는 전화로 ᄋᄋ엄마 홈쇼핑에 이거 같이 살래? 묻는다.? 남자 친구 형도 누나도 이십 대 중반에 부모님이 귀농을 하셔서, 남자 친구형도, 남친누나도, 남자 친구도 운전연수를 우리 아빠한테 배웠다. 나는 나랑 여동생뿐인데, 아빠 엄마는 아들이 둘은 있는 기분이라고. 아빠 출장 가서 항공기 지연돼서 새벽 두 시에 인천공항 도착했을 때 택시타고 오겠다는거 내가 남자친구랑 마중 나갔다. 피곤할텐데 군말 없이 남자 친구도 따라가 줬다. 남자 친구 부모님 결혼기념일이, 우리 부모님 결혼기념일과 16일 차이라서 올해는 같이 베트남으로 여행도 보내드렸다. 그리고 거지가 돼서 여름 휴가에 부산도 못 갔다ᄏᄏ
이번 연휴에 뭐 할 거야? 하니까 3일 내내 집에 있긴 뭐 하고 나가서 저녁이나 먹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평소대로 집 근처 갈 줄 알았는데 예약해 둔 데가 있다고. 오랜만에 분위기나 좀 내자고 해서 나쁘진 않지라고 생각했다. 모처럼 옷도 예쁘게 입고 나갔더니 정장을 쫙 빼입고 있어서 아직 그래도 내가 얘를 좋아하긴 하는가보네 싶었다. 객관적으로 내가봐도 잘 생긴 건 아니어도…하도 어릴 때부터 봐 왔더니 내 취향이 얘가 된 기분.?
밥 먹으면서 그런 얘길 했더니, 갑자기 손을 꼭 잡더라. 이게 뭐야? 왜 그래 갑자기 ᄏᄏᄏᄏ 했더니 우리 이십년을 넘게 알고 지냈어라고. 사귀자 그러자 얘기한 적도 없고, 얼떨결에 유치원 짝꿍돼서 계속 만나는 건데, 그게 좋은 사람이라 다행이라고. 오랫동안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완전 새삼스럽고, 완전 오글오글하니까 그만하라고 했더니 남자 친구가 속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드디어 커플링 주는 거냐?? 언제 주나 했다 ᄏᄏㅋㅋ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었는데, 남자 친구가 한 한마디에 머리에서 종이 쳤다?
“결혼하자 이제”
나 드디어 결혼한다. 이것도 연애에 쳐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철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유치원 때부터 만난 사람이랑 태어나서 처음 주는 반지를 결혼 반지로 준다. 생각해 보라고 하는데, 어제 저녁에 반지 받고부터 생각하고 말고가 뭐 있지? 이미 부부랑 다를 바 없는데 싶은 기분. 남자 친구 말고 만난 사람도 없고, 남자 친구 말고 생각해 본 사람도 없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 다 시집가고 애 낳고 그럴 때마다 얜 무슨 생각이지? 물어는 볼까 하다가도, 하긴 결혼해도 지금이랑 뭐 달라지기는 하는 건가 싶어서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었다. 친구들 결혼식 가서, 넌 대체 oo랑 언제 결혼하니? 물어올 때도 야 우린 이미 부부나 다름 없어ᄏᄏᄏ 하고 넘겼었는데.? 남자 친구가 어제 집까지 바래다주고 23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 들어가기 전에 끌어 안아줬다. 야 너 이런 거 정말 오글거리니까 하지 마라고 하고 들어왔는데 엘베 앞에서 막 가슴이 두근두근. 엘베 앞에서부터 반지 낀 손 장착하고 엄마가 문 열어주자마자 엄마 아빠 나 프러포즈 받았어!!!!!! 라고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고 그랬더니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 할거냐고 더 좋아한다.
근데 동생이 뭐가 달라져? 놀다가 밤에 자러 여기 안 와도 되는 거? 라고해서 뭔가 그러네 싶긴 했다. ᄏㅋㅋ 집을 이 동네 말고 다른데 구해야지ᄏᄏᄏ어 제 프러포즈를 받고 뭔가 우리가 오래 만난 거 같긴 하네…. 싶어서 생각하다가 그냥 한번 써 봤습니다. 지금껏 하도 오래 사귀어서 결혼에 대해서 하면 하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었는데…… 막상 결혼을 한다!!! 고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 좋네요. 진작 제가 닦달이라도 할 걸 그랬네요. 다음 연휴에 만나서 서로 모아둔 돈이 얼마나 있나 계산해 보기로 했습니다. ㅋㅋㅋㅋ
이쁘게 잘 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