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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기 강호동을 찍소리도 못하고 벌벌떨게한 씨름감독 김학용
강호동이 찍소리도 못하던 사람은 씨름선수이자 강호동의 스승 김학용. 1935년생으로 어릴때부터 강골에 힘이 장사였는데 중학교때 한 포대당 80kg가 나가는 가마 두 개를 들어올렸다고 한다. 이 힘으로 씨름계에 입문해 전국씨름 선수권 대회에서 3연패를 기록하는 등 50~60년대를 풍미했던 씨름꾼으로 지냈다. 80년대부터 씨름 감독으로써 여러 스타들을 키워냈고 가장 유명한 제자로는 강호동이 있다. 2007년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강호동이 몸을 움직일때마다 같이 몸을 움직이며 몰입하는 모습
본인 지시대로 안 하고 강호동 마음대로 하다 점수 뺏겨서 화남
판정에 항의하는 모습
황대웅 장사 상대로 승리하고 천하장사 결승에 진출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천하장사 남동하 선수를 꺾고 천하장사 먹으니까 기립해서 환호하는 모습
강호동 천하장사 승리의 텀블링
머리가 하얗게 셌는데도 강호동을 번쩍 들어올리는 모습
강호동의 재능을 믿어서 천하장사 결승전에서 지시보다는 격려를 했다고 함
호동이 나이트 가려면 가라고 허락해줌. 옆에서 양주 사라고 거드는 이준희 당시 코치. 나이트 진짜 가서 신난 호동
김학용 감독 고향인 자인면에 위치한 자인고등학교 씨름 창단식에 참가한 김학용 감독과 강호동
학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번 천하장사에 등극한 제자 강호동입니다라고 치켜세워주니 부끄러워?하는 강호동
강호동은 중학생 시절부터 이미 씨름계에서 엄청난 유명인이었다. 씨름 입문 과정의 이야기가 꽤나 흥미로운데 후학을 양성 중이던 황경수 감독이 직접 강호동을 마산중으로 스카우트해 왔다. 이후 강호동은 황경수 감독의 집에서 하숙하며 씨름을 배웠다는데 이때 강호동보다 먼저 황경수 감독 밑에 머물며 씨름을 배웠던 이가 바로 그 이만기였다. 즉 이만기와 강호동은 같은 스승을 두고 수학한 사형과 사제와도 같은 관계였다고 할 수 있겠다. 중학교 입학 후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한 강호동은 마산중 근처에 있는 마산상업고등학교에 가서 중2밖에 안 된 나이에 고등학교 씨름부 형들과 씨름으로 맞붙어서 깡그리 눕혀버렸다. 심지어는 이 때 치른 엄청난 유명세로 인해 중2 나이로 무려 경남대학교 씨름부 선수들과 씨름으로 맞붙어 박빙의 역량을 보였다. 자신보다 5살 이상 연상의 형들과 비빌만큼 강호동은 어렸을 때부터 씨름 천재였다. 씨름을 어찌나 잘 했는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프로 선수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같이 뉴욕으로 전지훈련도 다녀왔다. 그렇게 강호동은 고3이 되던 해, 아마추어 전국 통일장사를 거머쥐며 당대 최고의 슈퍼 루키로서 눈도장을 받게 된다.
1990년 3월 성남에서 열린 18회 천하장사대회에서 씨름판의 슈퍼스타이자 마산상고 대선배 이만기와 처음으로 천하장사 대회에서 맞붙었고, 그 전날 백두장사 결승에서 승리하고 준결승에서 또 다시 승리하면서 대선배 이만기에게 모래를 뿌렸던 전설의 세레모니로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90년 씨름판은 3번의 천하장사대회를 싹쓸이하면서 본좌로 등극했다. 백두장사는 2회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