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Social공자 후손 공덕성: 대만에서의 생활과 대만에서 치러지는 공자의 제사

공자 후손 공덕성: 대만에서의 생활과 대만에서 치러지는 공자의 제사

이 연재글은 놀랍고 굉장한 이야기의 12번째 글입니다.

공덕성 – 쿵터청

중화민국(대만)의 정치인으로 공자의 77대 직계후손으로 공자의 후손들이 대대로 세습하던 작위인 연성공을 마지막으로 세습했던 인물이다. 장제스가 대만으로 대피하면서 온갖 문화재를 싸들고 갈때 공자의 후손도 지켜야 한다고 같이 데려가게 된다.

공덕성

공덕성의 후손 근황

공덕성과 그의 손자들

왼쪽에 앉아있는 할아버지가 공자의 직계 후손인 공덕성이고 아기를 안고 있는 청년이 그의 손자다. 대대로 중국에서 공자의 직계 후손이 태어나는 날은 도시의 경사였고 공자 탄신일은 정부에서 고위관리를 보내서 행사를 같이 할 정도로 큰 행사였다. 심지어 오랑캐가 집권했던 청나라 때도 지켜졌었다.

국공내전

국공내전(國共內戰/国共内战)은 1927년 8월부터 1950년 5월까지 중국 대륙의 패권을 두고 벌어진 전쟁이다. 여기서 중국 공산당 마오쩌둥이 국공내전에서 이기게 된다.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에게 패배한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은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완 섬으로 옮긴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중국 대륙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고, 중화민국은 ‘대만(타이완)’으로 불리게 되는 결정적인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국공내전 이후 둘로 갈라진 중국

장제스의 특별지시를 통해 스승 여금산 등과 함께 대만으로 이주한 공덕성은 1955년, 국립대만대학 중문과와 인류학과 겸임교수로 초빙되어 교편을 잡게 되었다. 타이베이 공자묘를 개보수하는 과정에서 만인궁장의 문패를 직접 썼다. 중화문명의 정통을 자처하는 국민정부의 안배에 따라 고시원장, 총통부 자정 등의 고위직을 역임하였다.

공덕성 일가

중국에 불어닥친 문화 대혁명

마오쩌둥은 1966년 이념의 성전을 발동함으로써 중국 전역을 뒤흔들었고 혁명정신을 되살리려 했다. 마오쩌둥은 학교의 문을 닫아버렸고, 학생들로 하여금 홍위병이 되어 ‘부르주아 전문가’로 일컬어졌던 교사, 교장, 교수들에 대항하는 혁명투쟁을 벌이도록 선동했다. 이 혁명운동은 사회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자국의 문화를 자국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멸절시킨 전례 없는 대 사건으로 공산주의 체제의 내재적 폭력성과 경직성 그리고 체제적 한계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마오쩌둥과 문화 대혁명

홍위병과 마오쩌둥만 제외하고 보이는 모든 것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고 보면 된다. 공자까지 때려 부쉈으니 그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10년 동안의 운동으로 인해 중국의 온갖 지식인들과 수천년의 문화가 모조리 희생되었다.

이때 공자의 묘도 파헤쳐지고 모든 서적이 불태워졌으며 시체까지 파내서 부관참시하였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공자의 방계 후손들은 ‘나는 반동분자입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가두행진을 해야 했다. 심지어 공자(孔子)의 본명인 공구(孔丘)의 본명인 구(丘)를 개 구(狗) 자로 바꿔서 공구(孔狗)로 부르게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퇴계 이황의 황 자를 누렁이라고 한 거랑 똑같은 것이다.

대만에 있어 화를 면한 공덕성

대만으로 넘어간 공덕성은 그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고, 다시는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했던 바보짓으로 인해 잃어버린 정통성을 찾고자 돈이건 뭐 건 전부 지원해 줄 테니 공덕성을 다시 모셔오라고 했고 중국에 남아있던 공자의 방계 후손들이 공부가주(공자의 고향 산둥성에서 생산되는 ‘공자의 술’이란 별칭을 가진 술)를 들고 찾아왔지만 ‘나는 이런 술 모른다’라고 하면서 술병을 던져버린 일화가 있다.

끝끝내 중국땅을 밟지 않은 공덕성

중국 정부에서 중국에 남아있던 공덕성의 누나를 포섭해서 중국으로 데려오려고 하였지만 끝끝내 중국 땅은 안 밟고 대만에서 만났다. 공자가 중국인이 아니다 하는 건 지어낸 말이 아니다. 실제 문화 대혁명 때 홍위병들은 공자를 부정하였다.

미식을 없애려면 요리사를 죽이고 유교를 없애려면 공자를 죽이고 불교를 없애려면 부처님을 죽여라

대만에서 치러지는 공자의 제사

공덕성과 공자의 직계들은 현재까지도 대만에서 종신 공무원으로 공자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공덕성은 2008년에 사망했는데, 사망하고서도 절대로 중국 공묘에는 묻히지 않겠다고 해서 공묘에 묻히지 않은 3인의 공 씨 후손이 되었다.

공자의 제사

국가가 스스로 부정하고 공자의 직계 후손에게서 외면당한 중국은 공자의 나라가 아니다. 공자의 나라는 엄연히 ‘대만’이다. 재미있는 건 현재 중국어 시험 HSK를 주관하는 기관 이름이 Confucius Institute. 즉 공자학원인데 세계 국가들로부터 이 공자학원이 빠꾸 먹고 있다. 왜냐? 중국 정부가 공자 이름 건 학원으로 스파이 짓이랑 중공 선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관참시도 이런 부관참시가 없다는 거…

그래서 정부에서 뜨끔해서 손 뗀다고 뉴스에 떴는데 설마 진짜로 손을 떼겠는가? 결론은 지금 산동에서 공자 후손이란 사람들은 죄다 방계 혹은 공부가주 술 팔이 들이다.

진짜 직계는 대만에서 종신공무원 중이다.

공자
공자 –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 노나라 사람. 유교의 시조로서 중국 최초의 민간 사상가이자 교육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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